모임 뒤풀이에서 원치 않는 스킨십을 당했을 때
뒤풀이에서 원치 않는 접촉을 당하고도 그 자리에서 아무 말 못 했다면 그건 흔한 반응이에요. 기록을 남기는 법과 운영진에게 알리는 문장, 신고를 고민할 때 할 일을 담았어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해서 괜찮았다는 뜻이 되지는 않아요. 예상하지 못한 접촉을 당하면 몸이 굳거나 얼떨결에 웃어넘기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이미 지나간 일 같아도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이 꽤 있어요.
그때 왜 가만히 있었을까
집에 와서야 화가 나고, 왜 싫다고 못 했는지 자꾸 되감아 보게 되죠. 내가 웃어서 오해한 건가 싶기도 하고요.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손이 닿으면 대부분은 소리를 지르지 못해요.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되기 싫고, 내가 잘못 느낀 건가 확인하느라 몇 초가 지나가 버려요.
그 사람이 모임에서 오래됐거나 다들 좋아하는 사람이면 말이 더 안 나와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괜히 문제를 만드는 것처럼 보일까 봐서요. 그 짧은 순간에 그런 계산까지 하게 되는 게 사람이에요.
웃었다는 것도, 자리를 바로 뜨지 않았다는 것도 허락한 게 아니에요. 술을 마셨다는 것, 옆자리에 앉았다는 것,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상대가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거나 "친해지려고 그랬다"고 해도 그게 이유가 되지는 못해요.
잊기 전에 적어 두세요
신고할지 말지 정하지 않았어도 기록부터 남기세요. 날짜와 시간, 가게 이름, 앉았던 자리, 누가 어떻게 했는지, 내가 뭐라고 했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옆에 누가 있었는지요. 기억은 며칠만 지나도 순서가 섞여요. 폰 메모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 두고 다듬는 건 나중에 하세요.
그날 일을 믿는 사람에게 메시지로 말해 두는 것도 기록이 돼요. 언제 누구에게 말했는지가 남으니까요. 다음 날 상대가 "어제는 실수했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면 답은 안 해도 되지만 지우지는 마세요. 단체방에 올라온 그날 사진과 대화도 남겨 두고요.
가게 이름과 앉았던 자리, 시간을 적어 두라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신고를 하게 되면 가게 CCTV처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료가 있는데, 이런 건 오래 보관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뒤로 내가 어땠는지도 같이 적어 두세요. 며칠째 잠을 설쳤다, 모임 단체방 알림만 봐도 속이 울렁거린다처럼요. 사소해 보여도 상담을 받을 때 내 상태를 설명하는 데 쓰여요.
모임장이나 운영진에게 알릴 때
말로 하면 흐려지니 메시지로 보내세요. 들어가야 할 건 있었던 일, 내가 원하지 않았다는 것, 바라는 조치예요. "지난 토요일 뒤풀이에서 OO님이 제 어깨에 팔을 두르고 손을 잡았어요. 저는 원하지 않았고 자리를 옮겼는데도 다시 옆으로 왔어요. 앞으로 그분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게 해 주세요."
바라는 조치는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좋아요. 경고를 해 달라, 뒤풀이에 못 오게 해 달라, 모임에서 내보내 달라처럼요. 내가 말했다는 걸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도 돼요. 답이 전화로 오면 통화를 끝낸 뒤에 "아까 말씀하신 게 이런 내용 맞죠" 하고 메시지로 한 번 더 남겨 두세요.
"좋게 넘어가자", "둘이 만나서 풀어라" 하는 답이 돌아오기도 해요.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세요.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니라 다시 생기지 않게 해 달라는 거예요." 그 사람과 따로 만나 푸는 자리에는 나가지 않아도 돼요.
모임장이 그 당사자이거나 감싸기만 한다면 그 안에서는 풀기 어려워요. 베친처럼 신고와 차단 기능이 있는 앱에서 만난 모임이라면, 운영진에게 말하는 것과 별개로 앱 안에서 그 사람을 신고하고 차단해 두세요.
신고는 당장 정하지 않아도 돼요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으면 여성긴급전화 1366에 전화해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부터 물어보세요. 신고하기로 마음이 서면 112예요. 그 사람이 계속 연락하거나 집 근처에 나타나서 위협을 느낀다면 그때는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전화하세요.
망설이는 이유는 대개 비슷해요. 일이 커질까 봐, 모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봐, 나도 술을 마셨으니까. 그 걱정도 상담할 때 숨기지 말고 꺼내세요. 전화했다고 꼭 신고로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니에요.
며칠 지났다고 늦은 건 아니에요. 그래도 기억과 자료는 빠를수록 또렷하니, 고민하는 동안에도 기록만은 계속 모아 두세요. 신고하지 않기로 해도 그건 내 결정이고, 그렇다고 그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사이 상대가 직접 사과하겠다며 둘이 보자고 할 수 있어요. 나갈 필요 없어요. 사과는 메시지로 받으면 되고, 그 메시지도 기록으로 남아요.
예민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사람 원래 스킨십이 많아", "친해서 그런 거지", "술자리에서 그 정도는 있을 수 있잖아". 이런 말을 듣고 나면 내가 유난인가 싶어져요. 그런데 기준은 그 사람의 버릇이 아니라 내가 원했느냐예요. 누구에게나 그러는 사람이라는 건 문제가 더 크다는 얘기지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설득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저는 싫었고, 피했는데도 계속했어요." 이 한 문장이면 돼요. 여기에 편들어 주지 않는 사람과는 그 얘기를 더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 말이 통할 만한 한 명에게는 따로 물어보세요. "그날 혹시 본 거 있어요?" 하고요. 본 사람이 있으면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운영진에게 말할 때도 힘이 실려요.
그 모임에 계속 나갈지
정답은 없어요. 떠난다고 진 게 아니고, 남는다고 그 일이 괜찮았다는 뜻도 아니에요. 운영진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고 정하세요. 조치가 있었고 그 사람이 안 보이게 됐다면 남을 만하고, 흐지부지 넘어갔다면 그 모임이 어떤 곳인지 본 거예요.
남기로 했다면 한 사람에게는 사정을 말해 두고 그 옆에 앉으세요. 뒤풀이는 당분간 빠지거나 일차까지만 있다가 나오고요. 비슷한 낌새가 다시 보이면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 다른 자리로 옮기거나 "저 먼저 갈게요" 하고 일어나는 방법이 있어요. 말을 해야 한다면 웃지 않고 짧게, "하지 마세요", "불편해요" 정도로요.
그냥 껄끄러운 사람과 한 모임에 있을 때 쓰는 방법은 모임에 불편한 사람이 있을 때 글에 적혀 있어요. 다만 이번 일은 서로 안 맞는 정도가 아니라서, 내가 피해 다니는 걸로 끝낼 문제는 아니에요.
그만두기로 했다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단체방은 조용히 나오고, 거기서 친해진 한두 사람과는 모임 밖에서 계속 만나면 되니까요. 같은 취미를 하는 모임은 거기 말고도 있어요.
옆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는 크게 나서지 않아도 도울 수 있어요. "OO님, 저랑 자리 바꿔요" 하거나 "같이 화장실 가요" 하고 불러내는 거예요. 집에 갈 때 같은 방향이면 같이 나서 주고요.
다음 날 "어제 괜찮았어요? 제가 본 게 있어서요" 하고 먼저 연락해 주면 큰 힘이 돼요. 본 것을 날짜와 함께 적어서 건네주면 더 좋고요. 다만 당사자보다 앞서서 단체방에 터뜨리지는 마세요. 어떻게 할지는 당한 사람이 정해요.
그날 일을 어떻게 할지는 천천히 정해도 돼요. 적어 두는 것 하나만 오늘 해 두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