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자주 싸워서 집에 있기 힘들 때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를 방에서 숨죽여 듣고 있나요. 그 싸움은 내 탓도, 내가 말릴 일도 아니에요. 싸우는 동안과 조용해진 뒤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부모님이 싸우는 건 내 탓이 아니에요. 내가 말려야 하는 일도 아니고요. 두 어른 사이의 문제를 자식이 대신 풀어 줄 수는 없어요. 싸우는 동안 나를 덜 다치게 하고, 조용해진 뒤에 내 마음을 한 번 전하는 것. 내가 해 볼 일은 그 정도예요.
싸움이 시작되면 방으로 가요
거실에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세요. 버릇없는 행동이 아니에요. 그 자리에 서 있어 봤자 달라지는 게 없고, 듣는 만큼 마음만 무거워져요.
문에 귀를 대고 무슨 말이 오가는지 다 들으려는 애들이 많아요. 내 얘기가 나오나, 얼마나 심각한가 알고 싶어서요. 그런데 화가 났을 때 나오는 말은 평소 생각보다 훨씬 세고, 그걸 한마디씩 다 듣고 나면 며칠을 혼자 곱씹게 돼요.
그러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이나 영상을 틀어 두세요. 그런 날은 숙제가 손에 안 잡혀도 이상한 게 아니에요. 심장이 빨리 뛰고 손이 차가워지는 것도 겁이 나면 누구나 그래요.
동생이 있으면 같은 방에 있어 주세요. 어린 동생은 무슨 일인지 몰라서 더 무서워해요. 달래 줄 말을 찾을 필요는 없고 "우리 때문에 싸우는 거 아니야. 여기 같이 있자" 하고 영상을 같이 보거나 게임을 하면 돼요. 동생을 챙기다 보면 나도 덜 떨려요.
소리가 방까지 다 들려서 도저히 못 있겠으면 잠깐 나가 있어도 괜찮아요. 집 앞 편의점이나 아파트 놀이터처럼 밝고 가까운 곳으로요. 폰은 꼭 챙기고 "편의점 갔다 올게요" 하고 문자를 남겨 두세요. 말없이 사라지면 싸움이 내 문제로 번지고, 밤늦게 멀리 가는 건 나한테 위험해요.
말리는 건 내 일이 아니에요
둘 사이에 뛰어들어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죠. 그 마음은 알지만 하지 마세요. 흥분한 어른 둘 사이에 몸으로 끼어들면 밀리거나 부딪혀서 다칠 수 있어요. 싸움이 "너는 들어가 있어", "애 앞에서 뭐 하는 거야"로 옮겨붙어 더 커지는 일도 흔하고요.
내가 울면서 말렸더니 멈춘 적이 있다면 더 조심해야 해요. 그 뒤로는 싸움이 날 때마다 내가 나서야 끝난다고 믿게 되거든요. 그건 열몇 살이 맡을 자리가 아니에요. 싸움을 끝내는 건 싸움을 시작한 두 사람이 할 일이에요.
싸우다가 내 성적이나 학원비 얘기가 튀어나오면 가슴이 철렁하죠. 그런데 내 얘기가 나왔다고 내가 원인인 건 아니에요. 어른들은 돈이나 일, 서로한테 쌓인 서운함을 못 풀고 있다가 눈앞에 보이는 걸 붙잡고 부딪혀요. 내가 시험을 잘 봤어도 다른 걸로 싸웠을 거예요.
안 싸우게 하려고 혼자 애쓰게 되기도 해요. 말을 더 잘 듣고 성적을 올리면 집이 조용해질 거라고 믿으면서요. 그래도 싸움은 나요. 내가 모자라서 나는 싸움이 아니니까요.
누구 편이냐고 물을 때
싸우는 중에, 아니면 다 끝난 뒤에 한 분이 와서 "너는 누구 편이야", "네가 보기엔 누가 잘못했어" 하고 묻기도 해요. 여기서 한쪽을 고르면 안 돼요. 고른 쪽은 그 말을 다음 싸움에 쓰고, 안 고른 쪽은 나한테 서운해해요. "나는 둘 다 편이에요. 싸우는 소리가 무서워요" 하고 답하세요. 누가 옳은지 가려 달라는 질문에 내 기분으로 답하는 거예요.
한 분이 다른 분 흉을 나한테 길게 볼 때도 있어요. 자식이니까 들어 드려야 할 것 같지만, 듣고 나면 다른 한 분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져요. "그 얘기는 내가 듣기 힘들어요" 하고 말해도 돼요. "가서 아빠한테 전해", "엄마한테 물어봐" 하고 말을 옮기는 심부름을 시키면 "두 분이 직접 말하세요. 저는 전하기 싫어요" 하고 빠지세요.
조용해진 뒤에 전하는 한마디
싸우는 중에는 무슨 말을 해도 안 들려요. 하루 이틀 지나 집이 조용해졌을 때, 한 분씩 따로 있을 때 말하세요. 설거지하는 옆이나 차 안처럼 얼굴을 똑바로 안 봐도 되는 자리가 말 꺼내기 편해요. 말할 때를 고르는 요령은 폰이나 귀가 시간 문제로 부모님과 다툴 때와 똑같아요.
"엄마 아빠 싸울 때 나 방에서 다 들려요. 그럴 때마다 무서워요.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안 싸웠으면 좋겠어요." 이 정도면 돼요. 누가 잘못했다는 말은 빼고 내가 어떤지만 말하는 거예요. 입으로 꺼내기 어려우면 문자나 쪽지로 보내도 똑같이 전해져요.
부모님은 자식이 다 듣고 있다는 걸 생각보다 모르세요. 방에 있으니 못 들었겠지, 자고 있었겠지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말했다고 싸움이 바로 없어지지는 않아요. 그래도 한 번 듣고 나면 목소리를 낮추거나 밖에 나가서 얘기하는 식으로 조금은 달라지는 집이 꽤 있어요.
이혼 얘기가 들릴 때
"이럴 거면 갈라서", "나가" 같은 말이 들린 날은 잠이 안 와요. 누구랑 살게 되는지, 전학을 가야 하는지까지 혼자 다 상상하게 되죠. 싸울 때 나온 말이 전부 그대로 되지는 않아요. 화가 나면 누구나 평소 같으면 안 할 센 말부터 꺼내요.
혼자 짐작하면서 며칠을 보내느니 물어보는 게 나아요. "저번에 갈라서자는 말 들었어요. 진짜예요? 나 그 말 듣고 무서웠어요." 대부분은 화나서 한 말이었다는 답이 돌아와요. 혹시 정말로 따로 살게 되더라도 그건 두 분이 오래 생각해서 정하는 일이지, 내가 뭘 한다고 생기거나 막아지는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돼도 엄마는 엄마고 아빠는 아빠예요.
물건을 던지거나 때리는 일이 있다면
여기서부터는 말다툼이 아니에요. 물건이 날아가거나 누가 누구를 때리는 일이 벌어지면 직접 막으려고 하지 말고, 방문을 잠그거나 집 밖으로 나가서 112에 전화하세요. 전화가 연결되면 집 주소와 지금 벌어지는 일부터 말하세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신고하면 부모님을 배신하는 것 같아서 망설여지죠. 신고는 누구를 벌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누가 다치는 걸 멈추려고 하는 거예요. 나나 동생이 맞는 일이 있다면 더 망설일 이유가 없어요.
당장 위험한 건 아닌데 집에 있는 게 계속 무섭다면 1388에 전화해 보세요. 청소년 상담 전화라서 밤에도 받고,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돼요. 담임 선생님이나 상담 선생님, 이모나 삼촌, 할머니처럼 편한 어른 한 명에게 "요즘 부모님이 자주 싸워서 힘들어요" 하고 알려 두는 것도 꼭 하세요. 집안일을 밖에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웠을 수 있는데, 사정을 아는 어른이 한 명 있으면 급할 때 연락할 데가 생겨요.
집 말고 숨 돌릴 곳
집에 가는 길에 오늘도 싸우고 있을까 싶어서 발걸음이 느려진다면 집 밖에 있을 곳을 하나 정해 두세요.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서 숙제를 다 하고 들어가거나, 학원 자습실에 남았다가 가는 식으로요. 집에 있는 시간이 한두 시간만 줄어도 버티기가 달라요.
친한 친구 한 명에게는 말해 둬도 괜찮아요. 자세히 설명할 것 없이 "우리 집 요즘 좀 시끄러워서 집에 있기 싫어" 정도면 돼요. 주말에 친구 집에 가 있고 싶을 때 이유를 길게 대지 않아도 되니까 편해요. 자고 오려면 부모님께 어디 있는지는 꼭 알리고요.
다 싫어서 집을 나가 버리고 싶은 날도 있을 거예요. 그럴 때 갈 수 있는 곳을 미리 한 군데 정해 두세요. 할머니 댁이나 이모 집처럼 "오늘 거기서 자도 돼요?" 하고 물을 수 있는 어른 집이요. 갈 데가 정해져 있으면 밤에 무작정 나가는 일을 피할 수 있어요.
집 걱정 때문에 학교에서도 멍하고 등교하는 것까지 버거워졌다면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을 때 글도 같이 읽어 보세요.
부모님 사이를 좋아지게 하는 건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싸움이 있었던 날에도 밥을 챙겨 먹고 제시간에 자는 것, 내 몫은 거기까지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