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자기 힘든 얘기만 하는 친구
만날 때마다 친구의 힘든 얘기만 듣다 지쳤다면 관계를 끊기 전에 듣는 양부터 줄여 보세요. 지칠 때 쓰는 말과 예외로 둬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 시간 넘게 통화했는데, 끊고 보니 친구가 내 안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날이 있어요. 힘든 친구 얘기를 들어 주는 건 우정이 맞아요. 그런데 늘 한쪽만 쏟아 내면 듣는 사람이 먼저 닳아요. 친구를 끊을지 말지 고민하기 전에, 얼마나 들을지를 내가 정하면 돼요.
나누는 얘기와 쏟아 내는 얘기
힘든 얘기를 자주 한다고 다 문제인 건 아니에요. 얘기 끝에 "너는 요즘 어때" 하고 묻는지, 지난번에 한 얘기가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는지를 보면 갈려요.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들어 주는지도요.
쏟아 내는 쪽에 가까운 친구와의 통화는 모양이 비슷해요.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본론이 나오고, 상사든 애인이든 등장인물만 바뀐 같은 이야기가 몇 달째 이어져요. 내가 한마디 보태려 하면 "아니 근데 내 말 좀 들어 봐" 하고 다시 가져가요. 전화를 끊을 때 친구는 덕분에 좀 살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저녁 내내 기운이 없고요.
친구가 이별이나 퇴사 같은 큰일을 겪은 직후라면 한두 달은 일방적으로 듣는 게 당연해요. 여기서 말하는 건 그런 시기가 아니에요. 별다른 일이 없는데도 반년 넘게 같은 모양이 이어지는 경우예요.
이럴 때 흔히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고들 해요. 다만 친구가 나를 그렇게 쓰려고 마음먹은 경우는 드물어요. 받아 주는 사람이 있으니 계속 오는 거고,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는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듣는 시간을 먼저 정해 두기
제일 쉬운 건 시작할 때 끝나는 시간을 말하는 거예요. 전화를 받으면서 "나 삼십 분 뒤에 나가야 해서 그때까지는 괜찮아" 하고요. 만나는 날이면 "오늘 아홉 시에는 일어나야 해"라고 앉자마자 말해 두세요. 중간에 끊으면 매정해 보이지만 처음부터 정해 둔 시간은 서로 덜 민망해요.
밤늦게 오는 전화는 안 받아도 돼요. 다음 날 아침에 "어제 일찍 잤어.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답하면 정말 급한 일은 그때 얘기가 나와요. 긴 카톡도 마찬가지예요. 줄줄이 올라오는 말풍선마다 바로 답하지 말고, 퇴근길에 한 번에 읽고 한두 줄로 답하세요. 답이 빠를수록 다음 메시지도 빨리 와요.
기운이 없는 날에는 그대로 말하세요. "나 오늘은 좀 지쳐서 길게는 못 들을 것 같아. 주말에 다시 얘기하자." 이 말을 하고 나면 나쁜 친구가 된 기분이 드는데, 지친 채로 건성건성 대답하는 것보다 친구한테도 이쪽이 나아요. 건성으로 듣는 건 금방 티가 나거든요.
만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에요. 카페에 마주 앉으면 두 시간 내내 얘기만 하다 와요. 영화를 보거나 같이 걷는 약속으로 잡으면 하소연할 시간이 저절로 줄고, 둘 사이에 다른 얘깃거리가 생겨요.
조언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때
듣다 보면 답답해서 자꾸 방법을 말해 주게 되죠. "그럼 팀장한테 말해 봐", "그 정도면 헤어져야지" 하고요. 그런데 다음 주에 똑같은 얘기를 또 들어요. 이게 반복되면 듣는 사람은 무시당한 기분까지 들어요.
이런 친구는 해결책보다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방법을 내놓는 대신 물어보세요. "그래서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데?" 친구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얘기로 넘어가고, 없으면 지금은 그냥 속상한 거라는 걸 친구 스스로 알게 돼요. 나도 답을 찾아 줘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져요.
같은 얘기가 세 번째쯤 돌아오면 이렇게 말해도 돼요. "그 얘기 지난번에도 했잖아. 그때랑 달라진 게 있어?" 비꼬는 말투만 아니면 실례가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친구는 몇 년이고 같은 얘기를 해요.
한참 들은 뒤에는 화제를 바꿔도 괜찮아요. "그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너 지난번에 본다던 드라마는 어땠어?" 하고요. 말을 자르는 것 같아 미안하겠지만, 친구도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면서 기분이 더 가라앉고 있었을 가능성이 커요.
내 얘기를 꺼내 보면 보이는 것
늘 듣는 쪽이던 사람은 자기 얘기를 꺼내는 데 서툴러요. 친구 사정이 더 급해 보여서 내 일은 별거 아닌 것처럼 접어 두곤 해요. 한 번은 일부러 꺼내 보세요. "나도 요즘 일이 좀 있었는데 오늘은 내 얘기 좀 들어 줄래?" 하고 먼저 자리를 받아 놓는 거예요.
그때 친구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이 관계를 가늠할 수 있어요. "무슨 일인데" 하고 들어 준다면 그동안은 내가 말을 안 해서 몰랐던 거예요. 두어 마디 듣다가 "아 그래? 근데 나는 말이야" 하며 자기 얘기로 돌아가는 일이 매번 되풀이된다면 그 친구에게 나는 듣는 사람으로만 있는 거고요.
그걸 확인하고도 계속 서운하다면 한 번은 말로 꺼내야 해요.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을 말하는 방법에 적힌 것처럼 무겁지 않게, "요즘은 내가 듣기만 하는 것 같아서 좀 서운했어" 정도로요.
듣는 걸 줄이면 안 되는 경우
지금까지 한 얘기에는 예외가 있어요. 친구가 정말 위험한 상태일 때예요.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 며칠째 못 자고 못 먹는다, 회사에 못 나가고 있다, 애인이나 가족에게 맞고 있다. 이럴 때는 통화 시간을 줄일 일이 아니에요. 나 말고 다른 도움으로 이어 줘야 해요.
친구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은 나 혼자 들어 주는 것으로도 감당이 안 돼요. "네 얘기 듣는 건 괜찮은데, 이건 내가 들어 주는 걸로는 모자란 것 같아. 상담이나 병원에 한번 가 보자. 예약하는 거 내가 같이 알아봐 줄게" 하고 말해 보세요. 죽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를 알려 주세요. 누구에게 맞거나 위협받고 있다면 112에 신고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여성 친구라면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같이 말해 주세요.
덜 들어 주는 게 미안할 때
듣는 시간을 줄이기 시작하면 한동안 죄책감이 들어요. 힘든 애를 내가 밀어내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지금처럼 가다가는 어느 날 전화 오는 것 자체가 싫어지고, 그때는 줄이는 정도로 안 끝나고 아예 끊게 돼요. 조금 덜 듣는 건 이 친구를 오래 보려고 하는 일이에요.
친구가 서운해하면서 "요즘 너 좀 변했다"고 할 수도 있어요. 길게 해명하지 말고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요즘 여유가 없어서 그래"까지만 말하세요. 그래도 예전처럼 다 받아 주기만을 바란다면 그때 가서 멀어지는 친구와 거리를 두는 방법을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거꾸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는 아니었는지 돌아볼 만해요. 최근 통화 몇 번을 떠올려서 내가 상대 안부를 물었는지, 같은 불평을 몇 달째 하고 있지는 않은지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걸리는 게 있으면 다음 통화에서 "맨날 내 얘기만 했네, 너는 어떻게 지내?" 하고 먼저 물으면 돼요.
다음에 전화가 오면 받기 전에 오늘은 몇 분까지 들을 수 있는지부터 정하세요. 그것만 해도 통화를 끊고 난 뒤의 기분이 달라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