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거절 못 해서 늘 손해 봐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늘 내 시간과 돈을 내주고 있다면 성격을 바꾸기보다 문장을 준비하는 게 빨라요. 상황별 거절 문장과 거절한 뒤의 미안함을 견디는 법이에요.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성격이 센 사람이 아니에요. 할 말을 미리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성격은 금방 안 바뀌어도 문장은 오늘 외울 수 있어요. 연습은 대답을 뒤로 미루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요.
그 자리에서 답하지 않기
부탁을 받으면 생각하기도 전에 "어, 그래"가 나와요. 그러고는 집에 와서 후회하죠. 눈앞에서 상대가 실망하는 얼굴을 보기 싫고, 거절한 뒤에 흐르는 어색한 몇 초를 견디기가 힘들어서예요.
그렇게 수락한 부탁은 대개 티가 나요. 마지못해 해 주면서 속으로는 억울하고, 그 억울함이 쌓이면 엉뚱한 데서 터지거나 말없이 그 사람을 피하게 돼요. 한 번 거절하는 것보다 관계에 훨씬 나쁜 결과예요. 게다가 뭐든 들어주는 사람한테는 부탁이 더 몰려요. 사람들이 나쁘다기보다 제일 쉬운 길로 가는 거예요.
늘 손해 보는 기분은 큰 부탁 하나보다 작은 부탁이 쌓여서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커피 심부름이나 "이것 좀 봐 줘" 같은 건 하나하나 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어 보이니까요. 이번 주에 들어준 부탁을 한 번 세어 보세요. 생각보다 많다면 그중 제일 하기 싫었던 한 가지부터 다음에는 거절해 보세요.
미루는 말은 이런 거예요. "일정 좀 보고 저녁에 말해 줄게", "지금은 바로 답하기 어려운데 내일까지 알려 줄게." 거절이 아니라서 입 밖에 내기가 훨씬 쉬워요. 상대 얼굴이 안 보이는 곳에서 정말 감당이 되는 일인지 따져 볼 시간이 생기고, 안 되겠다는 답을 문자로 보낼 수도 있어요. 얼굴 보고는 못 하는 말도 글로는 쓸 수 있거든요.
미뤄 둔 동안에는 해 주고 난 뒤의 내 기분을 떠올려 보세요. 해 주고도 아무렇지 않을 일이면 하고, 일주일 뒤에도 억울할 것 같으면 거절하는 거예요. 내가 그 사람에게 같은 부탁을 할 수 있는 사이인지도 따져 볼 만해요.
약속한 시간에는 꼭 답을 주세요. 미뤄 놓고 답을 안 하면 거절보다 나쁜 인상이 남아요. "지금 바로 정해 줘야 해" 하고 재촉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정해야 하는 거면 나는 어려워"라고 하면 돼요. 생각할 시간도 안 주는 부탁은 거절해도 마음이 덜 무거워요.
미리 외워 두는 거절 문장
거절하는 말은 짧을수록 좋아요. 이유를 붙이면 그 이유가 곧 다음 질문이 돼요. "그날 약속 있어서"라고 하면 "그럼 그다음 날은?"이 돌아오는 식이죠. 안 된다는 결론부터 말하고, 미안하다는 말은 한 번만 하세요.
시간을 내 달라는 부탁에는 "그 주는 내가 여유가 없어서 어렵겠다." 주말 이사나 공항 마중 같은 부탁이 여기 들어가요. 일을 대신 해 달라는 부탁에는 "그건 내가 맡기 어려워.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가기 싫은 모임에는 "이번에는 빠질게. 다음에 만나서 얘기 듣자." 물건이나 차를 빌려 달라는 부탁에는 "그건 누구한테도 안 빌려주기로 한 거라서 미안해." 이렇게 서너 개만 입에 붙여 두면 웬만한 상황은 이 안에서 풀려요.
가까운 친구에게는 거절 뒤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다른 걸 한마디 붙이면 덜 차갑게 들려요. "그날 이사는 못 도와주는데 끝나고 저녁은 내가 살게." 부탁은 거절해도 너는 여전히 챙기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전해져요. 다만 미안한 마음에 원래 부탁보다 더 큰 걸 약속하지는 마세요.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은 금액이 작아도 유난히 입이 안 떨어져요. 이것만큼은 그때그때 판단하지 말고 원칙을 하나 정해서 매번 같은 말로 답하는 편이 덜 흔들려요. 그 문장과 이미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순서는 친구 사이의 돈 문제를 다룬 글에 있어요.
거절했는데 "에이, 한 번만" 하고 다시 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때 새 이유를 찾지 말고 같은 말을 한 번 더 하세요. "응, 그래도 이번에는 어려워." 같은 대답을 두세 번 들으면 대부분 물러나요. 이유를 바꿔 대기 시작하면 상대는 조금만 더 밀면 되겠다고 느껴요.
전부 말고 일부만 들어주기
부탁을 받으면 다 해 주거나 아예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만 있는 것 같지만 그 사이도 있어요. 다 하기는 벅차고 모른 척하자니 마음이 걸릴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세요. "이사 날 하루 종일은 어렵고 오전 두 시간은 갈 수 있어." "발표 자료를 만들어 주긴 어렵고, 네가 만든 걸 한번 봐 줄 수는 있어."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고마워해요. 조심할 건 내가 정한 만큼에서 멈추는 거예요. 오전만 돕기로 했는데 분위기에 밀려 저녁까지 있으면 다음부터는 내 말이 안 먹혀요.
회사에서는 조금 다르게
직장에서는 못 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부탁이 많아요. 여기서는 거절 대신 내 일의 순서를 보여 주는 말을 써요. "지금 보고서를 금요일까지 내야 해서요. 그걸 먼저 끝내면 다음 주 화요일에 가능한데 괜찮으세요?" 상사가 시킨 일이 겹쳤다면 "둘 중에 어느 걸 먼저 할까요?" 하고 정해 달라고 하면 뒤탈이 없어요.
옆자리 동료가 자기 일을 슬쩍 넘기는 건 얘기가 달라요. 한두 번 도와준 게 어느새 내 일이 돼 있다면 "이번까지만 제가 하고 다음부터는 직접 해 주세요. 방법은 알려 드릴게요" 하고 끝을 정해 주세요.
거절한 뒤에 드는 미안함
거절하고 나면 한두 시간은 속이 불편해요. 괜히 그랬나, 그냥 해 줄걸 싶고요. 안 하던 걸 하면 원래 그래요. 대개 하루를 넘기지 않아요.
이때 참아야 하는 게 있어요. 미안하다는 문자를 길게 다시 보내는 것, 그리고 "아니다, 그냥 내가 할게" 하고 번복하는 것이요. 둘 다 내 거절은 조금만 밀면 무너진다는 걸 상대에게 알려 주는 일이에요.
늘 들어주던 사람이 거절하면 상대가 "너 무슨 일 있어?" 하고 묻기도 해요. 그럴 때는 "요즘은 내 일부터 챙기기로 했어"라고만 답하세요. 사과할 일도, 길게 설명할 일도 아니에요.
거절 한 번에 눈에 띄게 차가워지는 사람도 있어요. 속상하지만 알아 둘 만한 일이에요. 그 사람에게 나는 부탁을 들어줄 때만 좋은 사람이었던 거니까요. "아 그래, 괜찮아"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훨씬 많고, 그런 사람들과는 거절한 뒤에 오히려 편해져요.
이미 한다고 해 버렸을 때
수락하고 나서 후회되면 무를 수 있어요. 단 빨리 해야 해요. 하루 이틀 안에 말하면 상대도 다른 사람을 구할 시간이 있어요. "지난번에 된다고 했는데 다시 보니까 내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늦게 말하는 것보다 지금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연락했어."
전날이나 당일에 무르는 건 피하세요. 그건 거절이 아니라 약속을 깨는 거라서, 약속을 자꾸 미루는 친구를 둔 사람의 기분을 상대가 그대로 겪게 돼요. 이미 늦었다면 이번은 하고, 다음 부탁부터 답을 미루는 연습을 하세요.
처음 몇 번은 거절하고도 종일 신경이 쓰일 거예요. 서너 번 하고 나면 답을 미루는 말부터 입에 붙고, 그때부터는 훨씬 수월해져요.




